방탄 빙의글 완결

방탄 빙의글 완결 - 육아선배론 1

정보쏙쏙이 2023. 1. 11. 11:0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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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

"민윤기?"

 알다마다요. 성은 민이요 이름은 윤기로다. 신입생들이 입학과 동시에 교수, 선배 가릴 거 없이 정수리가 땅에 처박히도록 인사를 올려야 한다는 군기보다도 더 바짝 새겨진 게 그 이름 석 자였을 터. 재학생들 내 분위기는 이미 포화 상태인 걸 보아하니 말 그대로 민윤기 선배의 복학이 어지간히도 센세이션이란 거다.

"너 선배 존칭 안 붙이냐. 잘못 찍혔다간 너도 야"

"…… 그 정도야?"

"말도 마. 그 선배가 순진한 여후배 살살 꼬드겨 애를 배게 했다는"

끝을 모르고 가지를 치던 이야기는 알아서들 입을 닥치는 걸로 마무리가 지어졌다. 아무렴 개강 날이자 민윤기 '선배'의 복학 디데이부터 눈에 띄어봤자 좋을 게 없긴 했다. 무려 뒷말은 안 해도 뻔한 그 '선배'라는 작자에게 말이다.

모조리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긴 하지만 확실한 건 민윤기 선배의 평판이 바닥을 친다는 것이었다. 하기야 여후배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놓고선 정작 본인은 휴학이랍시고 무려 3년을 얼굴도 안 비치다 드디어 복학을 한다고 하니 어련하실까.

"그 여자분은 아직 소식 없지?"

"오리무중도 이런 오리무중이 없다. 일면식도 없고, 누군지도 모르겠지만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네."

그런 작자에게 선배라는 호칭을 붙이는 게 맞을지. 딜레마에 빠지다가도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고개를 갸웃했다. 그 선배 유교과라고 했던 것 같은데. 근데 왜 우리 체육과에서 그 선배를 못 잡아먹어서 이 사달인지.

 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해서.

2.

전설의 선배 복학 관련 소문이 일파만파 퍼진 지 한 시간 만에 모든 건 사실로 판명이 났다. 민윤기 선배의 복학 소식을 체육과 다음으로 전해 들은 유교과 학생들이 소문으로만 익히 들어봤던 그 잘난 면전을 가장 먼저 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었다.

사건의 발단이 된 영접 시간은 1교시가 막 시작하려던 9시 정각, 출석체크 도중이었다. 뒷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긴 했지만 누구 하나 고개를 돌려보진 않았다. 제 앞가림 하기에도 벅찼던 탓에 문소리를 이어 누군가 맨 뒤, 빈자리에 앉는 듯한 소리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. 그 이름이 거론되기 전까진 그랬다.

"민윤기."

"네."

모두의 고개가 일제히 한곳으로 향했다. 개강의 여파로 다 죽어가던 학생들의 동태 눈깔들이 뭐라도 사냥감을 찾은 듯 번쩍였다.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은 출석체크 중이다. 네라는 대답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. 그러나 그 대답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. 그리고.

"어마눈"

"코-하자."

"우웅"

 그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는 작은 아이까지도.

저, 저건 또 뭐람. 대학교라는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뜻밖의 존재 등장에 수군대는 학생들 틈으로 이깟 시선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교재를 펼치는 사람은 그 소문 무성한 민윤기 선배가 맞았다. 저 작자의 실물을 봐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는데. 선배의 품에 꼭 안긴 채 곧장 잠든 아이가 옵션으로 딸려올 줄은 몰랐다.

이미 선배에게 아이의 존재에 대해 귀띔을 전해 받은 모양인지 교수는 크게 신경을 두지 않았다. 지금 이 상황이 가시방석인 것은 오로지 다른 학생들의 몫인 모양이었다.

대뜸 등장한 저 생명체는 뭘까. 선배의 동생? 그러기엔 선배와 너무도 대조되게 앙증맞았다. 애가 기껏 해봐야 세 살 같달까. 그렇다면 선배의 친인척인가? 그것도 아니면 뭐. 건너건너 아는 사람의 아이?

한 시간 내내 눈 한 번 뜨지 않고 곤히 잠든 아이의 동태를 파악하다가 수업이 끝이 나버렸다. 수업 내용은 일찌감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. 지금은 오직 한 팔로 거뜬히 아가를 안아든 채 반대쪽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살짝 웃는 선배의 모습만 눈에 들어찼다. 마침 불어온 바람이 선배의 앞머리를 잔잔히 들췄다.  존나 드라마.

안 그런 척 귀를 쫑긋 세운 학생들의 청력이 두 배로 밝아졌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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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밥은. 난 먹었지.  아 한방이? 아직 자. 이따 먹일 거야. 먹일 건데 나 살짝 서운하네. 나한테도 물어봐 주면 안 되나. 좀 물어봐 주지?"

저 선배 원래 저렇게 말이 많았나. 모두 입이라도 맞춘 듯 줄줄이 얼이 나간 사이 때를 맞춰 아이가 잠에서 깼다. 응석 부리듯 두 팔을 바둥대며 칭얼거리는 저 모습이 어쩜 저리 천사같을 수 있는지에 관한 건 나중에 하나하나 따져보기로 하고.

"압바 어마 엄마눈……"

일단은 들어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저 단어부터 어떻게 해석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았다. 전방 3미터 이내에서 똑똑히 들었던 그 단어를 상기하며 믿기 힘들다는 듯 저마다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. 내가 시발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?

꿈일까 싶어 제 뺨 아리를 후리는 학생들 사이로 전설의 선배는 무던하게 입을 뗐다. 것도 제 품에서 응석을 부리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말이다. 제3자들의 시선에만 낯설 뿐, 선배는 이게 일상인 듯 보였다.

"민한방. 오늘은 너 나랑 있어야 돼."

여러모로 전설이긴 했다.

3.

아마도 추정하길 이름은 민한방. 나이는 세 살.

판이 뒤집혔다. 예기치 못한 민윤기 선배의 2세 등장 한 번에 3년간 쌓였던 평판이 완전히 뒤바뀌었다. 아가의 나이와 선배의 휴학 기간을 빗대어보며 선배가 그때 그 여후배를 버리고 도망친 게 아니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. 아직 추정을 확신하기엔 이른 감이 있었다. 여전히 민선배를 뒤에서 씹어대는 무리는 존재했다.

"그 나이에 좆관리 제대로 못해서 애를 만든 게 무슨 자랑이라고."

"이 새끼 말하는 거 봐."

"아니 그렇잖아. 그건 그냥 답이 없는 거야. 책임감 있는 게 아니라."

건물 뒤편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선배를 안줏거리마냥 씹어대던 놈의 대가리가 빡 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. 씨발 뭐야. 제 뒤통수를 시원하게 갈긴 손바닥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재빠르게 뒤를 돌아본 놈은 곧 저보다 두 뼘이나 작은 여자를 마주하게 됐다.

지금이라도 도망치면 사람을 잘못 봤겠거니 눈감아주려고 했건만, 먼저 입을 연 건 놀랍게도 여자 쪽이었다.

"다 아는 것처럼 말해요, 왜?"

" 뭐?"

"막말로 그쪽이 뭘 그렇게 잘 안다고."

전공책을 한 아름 들고 서있던 여자는 소위 말해 무리에게 탈탈 털리지나 않으면 다행인 것처럼 왜소했다. 김여주. 전공책 표지에 적혀있던 이름을 확인한 무리가 저들끼리 마주 보며 낄낄댔다. 가던 길 가라 여주야? 딱 봐도 비아냥대는 어투와 덤으로 딸려온 담배연기에 발끈한 여주가 다음 말을 잇기 위해 입을 떼는데. 안타깝게도 나오려던 말이 도로 목구멍 깊이 들어가 버렸다.

"2학년?"

" 넵."

서둘러 담배꽁초를 발치에 던진 무리들이 일동 차렷 자세를 잡았다. 일렬로 칼각을 잡고 선 건 옵션이 아닌 필수였다. 눈앞에 본인들이 그렇게도 물고 뜯었던 민선배가 있었기 때문에.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못 되었다.

"아까 강의실에서 마주친 적 있는 것 같은데. 유교과?"

" 맞습니다."

어떠한 동요도 없이 무리를 제 앞으로 불러낸 선배는 오늘 수업에 대해 물어볼 게 있다며 제 뒤로 무리를 줄줄이 세운 채 자리를 벗어났다. 찍소리 못하고 선배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가는 무리의 꼴을 보아하니 아무리 물고 뜯었어도 선배는 선배다 이거다. 꼭 그게 아니더라도 좀 전까지 선배를 신명 나게 까고 있었다는 것 하나로 고개를 들 수 없는 명분은 충분했다.

이제 남은 문제는 이곳에 여주 혼자 남겨졌다는 것, 하나다. 씩씩거리는 콧김이 양쪽 콧구멍으로 사이좋게 뿜어져 나왔다. 나 아직 할 말이 차고 넘치는데. 웬 놈이 멋대로 상황을 끝내냐, 그런 의미로 두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.

더 정확한 요점은 쟤 지금 별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을 여기서 꺼내주기 위해 내 의사는 묻지도 않은 거지,라고 생각했다.  존나 열받게.

4.

개강 첫날이랍시고 가볍게 오티만 이루어지고 끝난 덕이 누군가에겐 황천길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거늘. 일찍이 귀가를 하게 된 윤기가 현관문 앞에 서서 몇 차례 심호흡을 이어갔다. 이마저도 마마, 어마 노래를 부르며 얼른 들어가자고 보채는 한방이 덕분에 멈춰야 했다.

"."

현관과 거실 그 경계선에서 걸음을 멈추었다. 더 이상 발을 뗄 수가 없었다. 커튼이 쳐있는 집은 평소보다 더 어두컴컴하게 느껴졌다. 자연스레 시선은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인영으로 옮겨졌다. 그 앞 협탁에는 김여주 이름이 크게 적힌 전공책이 겹겹이 쌓여있었다. 체육학개론, 기초체력육성, 한국체육사. 괜히 교재 제목을 쭉 한 번 훑어보는 딴청도 부려봤다.

이걸 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. 뻔히 예고된 다음 상황을 미리 떠올려보며 난감한 듯 뒷머리를 매만지는 제 아빠를 제치고 한방이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여주에게로 냅다 달려갔다. 여주는 아직도 방금 막 집에 입성한 존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.

이건 말 그대로 비상이었다. 타들어가는 아빠 속은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난만하게 여주의 품에 뛰어든 한방이를 바라보며 윤기는 마른침을 삼켰다. 사실 마땅히 시선을 둘 곳이 없었다.

그 정적 속에 이루어진 첫마디는 이랬다.

"자기야. 네가 진짜 나랑 각방을 쓰고 싶지?"

섬뜩했다. 여주의 이 말을 윤기는 가장 싫어했다. 그래서 뭐라도 둘러댈 말을 생각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. 그러다 결국, 무릎을 꿇는 시늉으로 그 첫 스타트를 끊었다.

"자기야.  사랑해."

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은 여주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.

 

2023.01.11 - [방탄 빙의글 완결] - 방탄 빙의글 완결 - 육아선배론 2

 

방탄 빙의글 완결 - 육아선배론 2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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